전라도 지명이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 만들었으니 나주의 위상을 알 수 있죠.
사적 제337호인 나주읍성은 고려 시대에 쌓은 성으로
일제강점기에 성벽과 성문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발굴하여
4대문을 복원해 천년고도 나주의 옛 영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영산강과 나주평야로 인해 고대국가인 마한의 중심지였으며
고려 시대에 이르러 광역자치 단체인 나주목으로
천년 고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나주에 복원된 나주읍성 4대문을 찾아가며
즐겨보는 고도 나주 여행 코스를 소개해드립니다.
동점문
고 지도에 남은 나주읍성의 4대문은 동문인 동점문과 남문인 남고문이 2층 누각으로 그려져 있으며
문 주위에 옹성을 쌓아 왜적을 방비할 수 있는 형태로 복원해 개방 중입니다.
동점문 왼쪽에 나주천이 영산강으로 흘러가고 하천을 건너면
야트막한 높이의 산 정상에 조성한 남산공원이 있으니 동점문을 둘러보고 공원 산책도 좋습니다.
동점문 성 밖 방향에 성문과 접해 넓은 주차장이 있어
편리하고 성문 안팎이 개방되어 아무 때나 관람할 수 있으며
야간에는 경관조명이 들어와 야경도 볼만하답니다.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홍예교로 된 성문을 지나면
성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양쪽에 있습니다.
성루의 양쪽에 설치된 협시문이 현재 폐쇄되어 입장은 불가능하지만
충분히 사진을 찍고 감상할만한 포인트는 많습니다.
남고문
남문인 남고문은 나주시 곰탕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며
대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합니다.
서울의 남대문과 비슷한 구조로 한때
전라도의 서울이라 불렸던 나주의 옛 영화와 위상에 걸맞은 규모입니다.
남고문을 중심으로 사거리를 로터리 형태로 도로를 개설하였으며
남고문 좌우에 도로변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으나
성문 위로 올라갈 수는 없으니 바라보기만 해야 한답니다.
서성문
다른 이름으로 영금문이라 불리는 서성문은 서문이며
금성관과 나주향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단같이 비치는 문이라는 뜻의 영금문이란 이명을 갖고 있는 서성문은
옛 성벽터가 남아 있는 유일한 곳으로 나주천에 이르는 250m 구간을 복원 정비하여 개방하고 있습니다.
09:00~21:00까지 성문의 누정도 개방하고 있으며
나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금성관과 목사내아, 나주향교와 더불어
곰탕거리와 인접하고 있으니 나주를 여행한다면 거쳐 가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곳입니다.
서성문에서는 동학농민군과 관군간의 치열한 전투로
동학농민군 3000여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서성문에서 50여 미터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주향교가 있으나
코로나로 인해 현재 개방을 하고 있지 않지만 골목이 아름다운 곳이니
쉬엄쉬엄 걸으며 노거수의 은행나무와 벽화 등을 감상해도 좋답니다.
북망문
4대문중 가장 최근에 복원한 북망문은 나주공고 입구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문 구역 내 주차장이 있으며 물을 채우지 않은 해자가 휘돌아가고
징검다리를 건너 성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성문 양쪽에 성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옹성으로 가려면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북망문을 관람하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심향사를 가면 보물 제50호인
나주 북망문 밖 삼층석탑과 보물 제1544호인 건칠아미타여래좌상과
더불어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 현종이 나주로 피신해 머물렀던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고찰 심향사의 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천년고도 나주를 지키던 나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사라졌지만
고증을 통해 옛 모습으로 복원된 4대문을 돌아보며
나주의 역사와 위상을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여행이 될 겁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나주지만 나주의 역사를 알아보는 여행도 소중하겠죠.
출처: https://blog.naver.com/najusi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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